트레이시 에민의 삶을 이용한 작품
- 미학적 잡담
- 2019. 5. 25. 10:09
미학적 잡담 : 트레이시 에민의 삶을 이용한 작품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이라는 작가는 ‘한 사람의 인생이 작품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답안처럼 느껴지는 작가인데요. 본인과 함께 잠들었던 할머니, 엄마, 전 남자친구들과 친구들 등의 이름을 텐트에 붙이며 작품을 만들고, 심지어는 본인이 실제로 사용하던 침대를 그대로 내놓는 것으로 작품을 만들기도 하는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새로움과 흥미로움 또는 혼란스러움 등이 공존하는 감정과 함께 미술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지경에 빠지기도 하죠.
대게 관객이 미술가의 인생에 관해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하는 시기는 한 미술가의 작품을 마음에 들어하면서부터인 경우가 많은데요. 트레이시 에민은 작품을 통해 직설적으로 자신의 삶을 관객에게 먼저 보여주는 독특한 과정을 만들어냅니다. 반 고흐, 피카소 등의 예술가들의 삶이 특별해지는 이유는 그들의 작품을 특별하게 느끼고 있는 관객에 의한 것인데요. 트레이시 에민의 경우 본인의 삶 자체는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하지 않은 본인의 삶을 작품으로 내놓는 것으로 자신의 삶과 작품을 한 번에 특별하게 만드는 독특한 과정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렇게 본인의 삶을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에 대해 '다른 이의 삶을 바라보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작품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개인적으로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은 그저 ‘다른 이의 삶’이라고만 말하기에는 부족한, 숨어있는 독특함이 존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사실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 속에 담겨있는 트레이시 에민의 삶은 대중이 좋아하거나, 대중을 자극할 요소를 아주 잘 설계한 듯 보이는 요소가 많이 존재하니 말이죠.
이 텐트 작품만 보아도 트레이시 에민의 치밀한 설계를 느낄 수 있는데요. 자신과 함께 잠들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붙여놓았다는 굉장히 일상적인 소재를 담고 있지만, 텐트 속에 적혀있는 이름 속에는 대중이 굉장히 좋아하는 자극적인 요소가 담겨있기도 합니다. 바로 완전히 다른 예술 성향을 가진 전 남자친구 ‘빌리 차일디시(Billy Childish)’의 이름인데요. 예술 같지 않은 예술품을 내놓는 진보적 성향의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 속에서 오직 그림만이 예술이라 주장하는 보수적인 미술 성향의 단체 ‘스터키스트(Stuckist)’를 이끌고 있기도 한 화가 ‘빌리 차일디시’의 이름을 만난다는 것은 ‘함께 잠들었던 사람들’이라는 일상적인 요소라는 포장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독특한 요소이기도하죠. 이러한 독특한 요소의 설계는 멀리서 보면 평범한 침대로 보이는 트레이시 에민의 '나의 침대(My bed)’라는 작품 속에서 발견하는 콘돔, 술병, 스타킹 등과 비슷한 역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는 중년의 여성이 된 그녀는 중년의 골드미스로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을 내놓고 있는데요. 최근 런던, 화이트큐브 갤러리에서 열렸던 그녀의 전시회를 보며, 그녀가 제 개인적인 취향의 작품을 내놓는 작가가 아님에도 ‘정말 일관성 있게 평생을 작업하는 작가구나...’라는 작은 감탄의 생각을 내놓게 됐던 것 같습니다. 아예 가치가 없다고 정의하고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없는 느낌의 작품이지만, '특별하지 않은 것을 이용하여 특별하지 않은 것을 특별하게 만든다.’라는 묘한 특징과 함께 살펴보면 은근한 흥미를 자극하는 일관성 있는 작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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