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그려낸 빛의 그림과 사진
- 미학적 잡담
- 2019. 5. 29. 08:09
'파블로 피카소’는 전 세계적으로 의무 교육을 받는 곳이라면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단언해 볼 가치가 있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예술가입니다. 정밀묘사가 무너져가던 시대의 흐름과 함께 그가 완성한 입체파라는 화풍은 다양한 화가에 의해 그려졌음에도 이제는 피카소를 상징하는 화풍이 됐습니다. 물론 이런 피카소의 입체파 화풍도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오늘은 그의 다작으로 엿볼 수 있는 예술에 대한 피카소의 열정을 살펴볼까 하는데요. 파블로 피카소는 평생을 살아가며 5만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엄청난 다작 예술가로도 유명하니 말이죠.
물론 이 5만여 점 중 우리가 피카소 하면 쉽게 떠올리는 회화, 스케치 작품은 1만 5천여 점 정도인데요. 그 외 조형, 도자기, 프린트, 무대 디자인 등의 작품이 무려 3만 5천점에 달합니다. 그중 제가 개인적으로 많은 관심을 가지는 작품은 ‘라이트 페인팅(Light painting)’이라는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페인팅(Painting)이라는 회화 작품을 뜻하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카메라의 셔터속도를 조정하는 것으로 피카소가 허공에 그려낸 빛의 잔상을 담아내는 사진 기술을 이용한 작품입니다. 굳이 정확하게 분류를 하자면 페인팅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사진 기술을 이용한 사진 작품인 것이죠.
페인팅이라 불리지만, 정확히는 사진 작품인 이 ‘라이트 페인팅’은 미술 속 매체가 가지는 경계의 모호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인데요. 사실 저는 미술 작품을 그저 ‘눈으로 보는 이미지’라는 의미 안에서 바라보기에 이 그림과 사진을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라 생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나 그림과 사진은 그 경계가 더욱 모호한데요. 역사적으로도 사진 기술은 화가에 의해 주도적으로 발전된 기술이면서 역사상 첫 사진기라 언급되는 모든 사진기는 사실 화가에 의해 발명됐다는 사실이 존재하기도 하니 말이죠.
피카소가 허공에 빛으로 그려놓은 그림을 담아낸 사진은 ‘빛으로 그려낸 그림’이라 불리기에 딱 좋은 모습을 가졌는데요. 사진 속 허공에 그려진 그림은 분명히 피카소가 그려낸 그림이지만, 이 사진은 또 이 사진을 찍어낸 사진가의 사진이기도 하다는 또 다른 모호한 경계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누가 그리느냐, 누가 찍느냐에 따라 작품의 주인은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심지어는 누가 혹은 어떻게 이름 붙이냐에 따라 사진이 자연스럽게 그림이 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피카소가 활동하던 시대는 사진기가 상용화된 지 100년이 채 흐르지 않은 시점이었는데요. 이 시기는 또 사진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예술로 인정할 것이냐, 인정하지 않을 것이냐에 관한 논쟁이 이루어지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런 혼란의 시기 십대 시절부터 명성을 얻으며 평생을 스타 예술인으로 살아온 피카소의 이런 행위는 어쩌면 지금과는 꽤 다른 의미를 가졌을지도 모르는데요. 지금 우리가 느끼는 ‘예쁜 이미지구나’라는 느낌과는 다른 사진과 그림 사이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사람들에게 선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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