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하지만 진부하지 않은 말
- 미학적 잡담
- 2019. 5. 30. 09:49
트루이즘(Truism)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한국어로는 ‘뻔한 말’, ‘진부한 문구’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인데요. 개인적으로는 '진부한 문구'보다는 ‘뻔한 말’이라 번역하는 것을 선호하는 단어죠. 사실 트루이즘이라는 뻔한 말 안에는 뻔하지만 진부하지만은 않은 문구가 많이 존재하기 때문인데요. '제니 홀저’의 트루이즘 시리즈를 살펴보면 이를 쉽게 느껴볼 수 있습니다.
제니 홀저는 ‘너의 삶을 위해 투표하라.(Vote for your life)’, ‘가장 오래된 두려움은 최악의 두려움이다.(The oldest fears are the worst ones)’ 등 뻔하디 뻔한 트루이즘스러우면서도 진부하지만은 않은 문구를 사람들 앞에 내놓는 트루이즘 시리즈를 제작했는데요. 삶을 위해 투표해야 한다는 사실은 뻔하디 뻔한 대목이지만, 투표는 어김없이 어려운 선택의 존재인 것처럼 세상에는 뻔하지만 진부하지만은 않은 말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어쩌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그리 편하게 풀어낼 수 없기에 외면을 하고 있던 존재일지도 모르죠.
이렇게 ‘뻔하다’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모두 알고 있지만 외면당하던 문구가 버스 전광판, 빌딩 전광판과 같은 군중 속으로 파고들면 이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는데요. 버스 전광판, 빌딩 전광판과 같은 광고를 위한 공간은 지나가는 사람의 눈길이 많이 닿는 공간이니 말이죠. 많은 사람을 향한 노출에 특화된 광고 공간에 나타난 제니 홀저의 트루이즘 문구는 일상 속 한 명의 개인이 혼자 이 문구를 꺼내 들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만드는데요. 평소 바라보던 광고와는 다른 예상치 못한 트루이즘 문구는 더더욱 사람들의 눈길을 끌며 이러한 효과를 극대화하기도 하죠.
물론 길거리 광고를 무시하는 삶에 익숙한 우리는 평소 맥도날드, 삼성, 엘지의 광고를 훑고 지나치듯, 이 뻔하지만 불편한 문구마저도 평소보다 인상적인 광고를 보듯 작은 눈길과 함께 일상으로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맥도날드, 삼성, 엘지 광고를 보고 지나치는 모든 이들이 이 기업의 고객이 되지 않으면서도 이 기업이 세계적인 기업이 됐듯,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 뻔하고 귀찮은 사실에 관해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간다면 이 뻔하지만 불편한 문구를 가진 이 세상도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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