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흘러가고 각자 끝이 나다
- 미학적 잡담
- 2019. 6. 1. 09:38
예술은 언제나 보고, 느낀 것을 묘사하는 행위와 함께 해왔습니다. 돌과 나무를 조각하여 입체적인 조형물이나 조각상을 만들고, 평평한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며 입체적인 공간과 사람, 사물을 표현해냈죠. 이렇게 사물, 인물, 공간을 표현해낸 미술은 ‘시간’이라는 새로운 도전과제를 만나는데요. 늘 함께하고 있지만,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시간이라는 존재는 이미 여러 작가에 의해 표현이 시도된 바 있죠.
오늘은 이렇게 미술의 도전정신을 자극하는 시간을 표현해낸 작품 하나를 살펴볼까 하는데요.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라는 쿠바 출신의 미국 작가가 내놓은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시계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무제:완벽한 연인(Untitled:Perfect Lovers)’이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인데요. 어디선가 한 번 보았을 법한 모양의 시계가 나란히 놓인 모습이 가벼워 보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꽤 굵직한 작품이죠.
나란히 놓인 두 시계는 똑같은 시간과 분 단위를 가르치다 못해 초침까지도 똑같이 흘러가고 있는데요. 작가는 이 두 시계를 통해 에이즈에 투병하고 있는 연인과의 시간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작가는 두 시계 속 시간이 똑같이 흘러가듯 투병 중인 연인과 함께하고 있지만, 똑같이 만은 끝나지 않을 두 시계의 미래를 통해 본인과 연인의 미래를 함께 표현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작가는 죽음을 맞이하기 6년 전 연인을 먼저 떠나보낸 후 본인의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시계이지만, 이 작가와 연인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괜스레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과 함께 끝, 죽음이라는 키워드마저 꺼내 보게 만드는 작품이죠.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언제나 바라보는 시계이지만, 두 개를 나란히 놓는 것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 시간을 표현해내는 과정이 흥미로운 작품인데요. 시간이 똑같이 맞춰진 두 개의 시계와 작가의 스토리가 만나며 만들어지는 오묘한 시너지는 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 미래, 끝, 죽음 등 매일 보는 평범한 시계로 이런 다양한 생각을 끌어내도록 만드는 미술이라는 존재는 오늘도 또 잡담처럼 조용한 흥미를 끄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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