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인식하는 세 가지의 방법
- 미학적 잡담
- 2019. 6. 2. 11:50
사진, 사물, 문자는 서로 딱히 공통점이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세 가지 요소이지만, 사실 사람은 이 세 가지를 굉장히 비슷한 과정으로 인지합니다. 오늘 살펴볼 조셉 코수스의 작품은 이러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인데요. 지나치게 당연한 사실이라 첫 만남에서는 ‘이게 어쨌다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지만, 파고들수록 흥미가 느껴지는 숨은 재미를 가진 작품이기도 하죠.
우리의 머릿속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의자에 관한 경험과 함께 ‘의자’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존재하는데요.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의자’의 이미지는 평소 다양하게 만나는 물건 중 무엇이 의자인지를 구별하게 해줍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다리가 아프고 피곤할 때 책상이나 밥상에 앉는 실수 없이 그 옆에 놓인 의자에 앉을 수 있는 것인데요. 이처럼 ‘책상이나 밥상은 앉을 때 쓰는 물건이 아니다’, ‘의자는 편안하게 앉아 휴식을 취해도 되는 물건이다’처럼 책상, 밥상, 의자 등의 단어에는 사회적인 약속이 담겨있기도 한 것이죠.
그런데 이런 인지의 과정은 실제 의자, 책상, 밥상을 만났을 때의 올바른 사용법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실체가 아닌 의자 사진과 실제 의자, 의자를 설명하는 글 등을 보고도 똑같은 ‘의자’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데요. 마치 흰색의 접히는 의자 사진과 원목 재질의 실제 의자를 동시에 보면서도 ‘사람이 앉을 때 사용하는 물건’이라는 사전적인 의미의 ‘의자’를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죠. 이처럼 실제 존재하는 물건이 아닌 사진과 글을 보고 떠올리는 일반적인 이미지는 사회적인 공감 요소를 이용하는 예술의 핵심일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은 ‘하나와 세 개의 의자(One and three chairs)’라는 제목처럼 실제 의자 하나와 사회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의자’라는 단어를 품은 기호로서의 의자 세 개를 나타낸 것인데요. 실제로 존재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중간에 놓인 의자 하나뿐이지만, 조금 더 큰 시각에서 바라보면 중간에 놓인 실제 의자마저도 사회가 정해놓은 ‘의자’라는 범주 속 물건에 불과하니 말이죠. 우리는 언제나 실제 존재하는 우리 자신과 삶을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는 사회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많은 것을 사회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자 세 개를 나란히 놓은 작품을 가지고 너무 지나친 잡담을 펼치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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