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내쉬는 숨 한 봉지
- 미학적 잡담
- 2019. 6. 6. 07:24
미술이 전통미술에서 현대미술로 넘어오며 작품의 경계는 그림, 조각처럼 특정 매체의 틀을 넘어서기 시작합니다. 현대미술 속 작품은 전통미술과는 다르게 표현과 묘사보다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의 행위 자체를 의미하기 시작하는데요. 정확히는 작가의 행위를 의미했다기보다 미술가가 작품을 만드는 행위가 무엇인지 그 자체에 관해 의문을 가졌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런 다양한 변화와 함께 작품은 캔버스 위에 예쁘게 그려진 그림 외에도 선 하나를 그리거나, 물감을 던지는 작가의 행동을 표현하는 그림 등으로 변화했죠.
그런데 이렇게 '작가의 행위가 작품의 일부다'라고 주장하며 나타난 선 하나 그려진 그림조차 당황스럽게 느끼고 있는 관객을 더욱 당황시키는 작품이 나타나는데요. 오늘은 이런 당황스러움 이상의 당황스러움을 보여준 작품과 함께 잡담을 나눠볼까 합니다. ‘어디까지 작품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을 다수 만들어낸 ‘피에로 만초니’의 작품 ‘예술가의 숨’이라는 작품인데요. 예술가의 똥이 담겨있다 주장하는 캔을 만들기도 했던 그의 작품 리스트와 어울리는 예술가 자신의 숨을 담아낸 풍선을 내놓은 작품이죠.
‘하다 하다 이제는 별짓을 다 한다...’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선 하나 그려진 그림보다 사람을 더 당황시키는 작품을 만들어낸 그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기도 한데요. 피에로 만초니는 심지어 한숨 당 20 센트라는 가격을 책정하여 이 작품을 판매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풍선의 입구를 아무리 잘 마감하여도 미세하게 바람이 빠지며 작아지듯, 제작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이 작품은 현재 바람이 완전히 빠진 상태가 되었는데요. 한때는 예술가의 숨을 머금고 있던 풍선이 처음 함께 제공된 나무판에 들러붙은 모습의 현재는 사실상 예술가의 숨결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작품이 된 것이죠.
피에로 만초니의 작품은 유머 섞인 메세지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과 굉장히 잘 맞는 작품들인데요. 하지만, 이 작품들의 팬인 저조차도 그의 작품을 설명하며 당황스러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 고무만 남은 판자를 가지고 '예술가가 숨을 내쉬는 행동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혹은 '이런 행동을 담고 있는 개념적인 작품이다'라고 설명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한 모습이니 말이죠.
피에로 만초니의 작품 제작 의도 자체가 미술을 조롱하거나 희화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헛웃음이 나오는 그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자면 말도 안 되는 가벼움을 이용하여 무거운 듯 포장된 미술의 실체를 폭로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이러한 느낌이 한없이 가벼운듯한 그의 작품을 가볍지만은 않게 해주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미술은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라고 무겁게 이야기하기보다는 '미술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듯 작품을 내놓는 것으로 미술이 그저 사회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잡담 같은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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