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미완성을 이용한 완성
- 미학적 잡담
- 2019. 6. 13. 07:30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을 구분하는 가장 간단한 기준은 작품이 제대로 끝난 것처럼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가 있습니다. 대개는 카메라의 상용화가 이루어진 19세기를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을 구분하는 기점으로 잡는데요. 전통미술 속 화가보다 세상을 빠르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카메라가 장인의 성격이 강했던 전통미술을 변화시켰다는 것이 미술사의 정설입니다. 번개처럼 나타난 사진 기술에 화가들은 카메라가 할 수 없는 배경 없는 그림, 특이한 색의 그림, 특이한 형태의 그림 등을 탄생시키며 현대미술의 시작점이 됐다는 것이죠. 물론 이를 카메라의 발명만을 원인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산업혁명, 시민혁명 등 과학과 사상의 발전과 함께 나타난 사회 전체적인 변화라는 큰 시각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19세기보다 무려 400년이 빠른 15세기에 이미 현대미술은 시작됐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정확한 묘사와 표현의 무너짐이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을 나누는 기준이라면 이미 이러한 변화가 15세기 말, 르네상스 끝 무렵에 존재했다는 주장이죠. 손에 꼽히는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한 조각 시리즈가 이러한 주장의 예가 되고는 하는데요. 전통미술과 현대미술 사이에 있는 것만 같은 조각의 모습이 미완성을 이용한 완성작인지, 그저 한 거장의 끝내지 못한 미완성작에 불과한지를 궁금케 하는 작품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이 조각 시리즈는 작품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어 후대 학자에 의해 ‘노예 연작’ 혹은 ‘죄수 연작’이라 불리고 있는데요. 조각 시리즈의 겉모습으로 인해 아직도 여러 의문을 낳고 있는 작품입니다. 만약 이 조각이 미켈란젤로의 다른 흔한 대표작처럼 고귀하거나 위풍당당한 인물을 표현하는 중이었다면, 이 조각이 그저 미완성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는데요. 조각 시리즈가 후대 학자에게 ‘노예 연작’, ‘죄수 연작’이라 불리듯 노예와 죄수의 형상을 한 겉모습과 함께 의문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노예와 죄수의 모습을 투박하게 조각한 듯한 겉모습이 현대의 시각에서만큼은 완성작이라 부르기 충분한 작품인데요. 완벽한 원근법과 정밀한 묘사와 표현의 끝을 보여주는 당시의 르네상스 미술과는 또 한층 다른 모습이기에, 미켈란젤로가 이 상태에서 완성을 선언한 작품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과 의문이 존재하는 것이죠. 심지어 이런 조각상이 여러 개 연작 형식으로 발견됐으니 의문은 증폭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은 사실 개인적으로도 의문을 풀고 싶어 틈틈이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작품인데요. 미술 역사상 자료가 폭발 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는 르네상스 시기의 작품이라 더더욱 해석과 의견이 분분하여 저도 아직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과 함께 어떤 선택을 한 것인지 확신을 가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맞든 ‘완성’과 ‘미완성’이라는 미술 속 개념에 관해 생각해보기 정말 좋은 작품이라 확신하는 작품이죠.
사실 미켈란젤로가 이 조각상들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1530~4년도는 이미 르네상스 전성기 시절 거장들의 장인적인 표현과 비율을 무시하는 ‘매너리즘’ 형태의 미술이 꿈틀대던 시기인데요. 물론 미켈란젤로는 매너리즘 미술가가 외면하려 했던 르네상스의 살아있는 거장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100년 가까이 지속된 르네상스의 부흥을 이끈 많은 거장과 이 거장들이 만들어낸 르네상스스러운 작품은 르네상스 거장의 마지막 세대인 미켈란젤로에게도 부숴보고 싶은 거대한 벽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거장 미켈란젤로도 결국은 과거보다 더 나은 미술을 완성하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한 명의 미술가이니 말이죠. 어쩌면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이 조각상이 미완성을 이용한 완성을 선언한 작품일 때 훨씬 더 높은 가치와 의미를 가지게 되는 현대의 시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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