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다 아는 모나리자
- 미학적 잡담
- 2019. 6. 14. 10:43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역작이라 표현되는 ‘모나리자’는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그 눈썹 없는 여자 그림?’이라는 답 정도는 들을 확률이 높은 유명작입니다. 심지어 미술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다양한 서적, 다큐멘터리, 강의를 통해 이 작품에 관한 다양한 해석과 분석, 뒷배경까지 섭렵하고 계신 분도 많으실 텐데요. 사실 이 모나리자는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의 미술에 관해 생각해볼 때 상당히 좋은 예가 되는 작품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방문해 모나리자를 직접 봤든 진품을 본 적 없이 사진과 영상을 통해서만 접했든 모두가 함께 알고 있는 작품이니 말이죠.
이처럼 ‘보았다’와 ‘알다’라는 표현에 비슷하면서도 다른 의미가 존재하는 것은 원본의 복제품 때문인데요. 여기서 복제품은 모나리자의 사진, 영상 등을 의미합니다. 원본의 모나리자를 촬영한 사진과 영상은 루브르에서 원본을 관람한 경험 없이도 이 모나리자에 관해 알고 있게 해주는 핵심적인 요소인데요. 한 번도 원본을 본 적이 없지만, 작품에 관한 해석과 분석, 뒷배경을 알고 있는 모든 작품에 관한 지식이 바로 이런 사진과 영상이라는 복제품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죠.
원본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며 관람하는 경험 없이 한 작품에 관해 알게 해주는 이런 사진과 영상의 힘은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도록 돕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요. 한편으로는 사진과 영상을 통해 쌓인 원본에 대한 환상으로 인해 뒤늦게 만난 원본 작품 앞에서 실망하게 되는 독특한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사진과 영상을 통해 모나리자를 꽤 큰 그림이라 인지했던 일부 관객이 생각보다 작은 크기의 원본 모나리자 앞에서 실망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말이죠.
‘원본을 보았다.’, ‘복제품을 보았다.’, ‘그것을 알고 있다.’라는 이 세 가지 표현은 무한하게 복제되는 사진, 영상이라는 존재와 이를 빠르게 공급하는 미디어 매체를 이해하는 키포인트가 되는데요. 원본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때의 감상을 생각해보면, 사진과 영상을 통해 얻은 경험과 함께 ‘보았다’, ‘안다’라 표현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몇몇 작품은 재해, 파손, 도난 등으로 원본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런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오직 사진과 영상 등으로 남아있는 복제품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죠. '원본이 아예 존재하지 않지만, 작품을 감상한다.’라는 이 표현은 모순적으로 느껴지지만, 실생활에서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미술품만이 아니라 연예인, 해외 건축물 등 살면서 실제로 한 번 보기 힘들지만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것들이 많은 것처럼 말이죠. 심지어 애니메이션, 영화, 컴퓨터 그래픽 같은 디지털 이미지는 모든 컴퓨터 화면, TV 화면 위 이미지가 진품의 이미지가 되는 독특한 환경을 조성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보았다고 믿으며 알고 있는 것들에는 사실 진짜를 보지는 못했던 것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진짜를 본 적 없이 알고 있다.’라는 표현은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진품 없이 진행하는 감상을 그리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는데요. 사실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맞닿들이는 진품의 작품도 세월의 힘을 이기기 위해 여러 번의 세척과 복원을 거치며 처음 거장의 손을 떠났을 때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죠. 진짜를 보느냐, 가짜를 보느냐 혹은 그저 미술을 보느냐는 어쩌면 관객의 생각에 달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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