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담긴 화가의 생각과 시선
- 미학적 잡담
- 2019. 7. 8. 17:43
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은 하나의 그림에 담긴 여러 개의 시선이 눈길을 끄는 작품입니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그림을 조용히 보고 있자면, 그림 속 이미지가 화가의 시선인지 혹은 화가의 상상인지가 궁금해지는 작품이기도 한데요. 고전 명화보다는 현대미술에 더 많은 관심이 있던 저에게 그림에 대한 큰 흥미를 끌어낸 몇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림 한 장에 담긴 여러 시선과 함께 그림이라는 이미지가 화가에게, 또 관객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느껴보고 생각해보기 좋은 작품이니 말이죠.
공주, 공주의 시녀, 난쟁이, 국왕과 왕비, 시종 그리고 화가 벨라스케스 본인까지, 그림 속에서는 상당히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이 그림 앞에선 관객이 가장 보편적으로 느끼는 시선은 바로 화가 벨라스케스 본인의 시선입니다. 화가 벨라스케스가 벽면의 거대한 거울을 통해 자신이 놓인 상황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다 느끼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벨라스케스가 숨겨놓은 하나의 작은 트릭으로 인해 이 그림의 시선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데요. 그림 정면, 인물들 뒤에 위치한 벽의 그림들 사이 인물 두 명을 담은 거울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시 궁정 화가들의 기록을 통해 이 둘이 왕과 왕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하는데요. 이 두 인물이 그려진 벽면의 거울이 벽면의 그림들 사이에 있어 그림으로 오해를 할 수 있지만, 유난히 밝게 그려진 모습과 함께 일반 그림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죠. 그리고, 그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가 서 있을 공간을 추측해보면 그림 속에 표현된 시선 이 왕과 왕비의 시선이라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림이 왕과 왕비의 시선을 그려냈다는 이 두 번째 추측은 그림 속 화가 벨라스케스 본인의 시선이라 생각했던 첫 번째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데요. 그림이 그려진 상황 자체는 사실 벨라스케스가 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상황인 것이죠. 마치 벨라스케스가 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을 왕 혹은 왕비가 스마트폰으로 스냅사진처럼 찍은 것 같은 시선을 담은 그림이 되는 건데요. 물론 이 그림은 벨라스케스가 그렸기에 그 상황 속 왕과 왕비의 시선을 상상해서 그려낸 그림이 되는 것이죠.
그림은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담아내는 사진이라는 존재와는 다르게 화가의 시선을 담아내며, 화가의 상상 또한 담아낼 수 있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본 것과 상상한 것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이 자유로움이 동굴벽화부터 시작되는 그림이라는 가장 오래된 예술 활동의 원천일지도 모르는데요. 인간의 모든 역사 속에서 인간이 보고 느끼고 상상한 것을 그렸기에 다양한 시각 이미지 기술이 발명되고 발전한 현재에도 그림은 항상 예술의 기본이 되는 것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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