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없는 구성의 의미
- 미학적 잡담
- 2019. 7. 27. 19:49
독특하면서도 감성적인 초현실주의 그림으로 유명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살펴보다 보면, 그의 작품이 그저 예쁘고 감성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은 이런 특징이 도드라지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꿈의 열쇠’와 함께 잡담을 나눠볼까 하는데요. 창문 액자 같은 틀 사이에 말과 시계 등을 그려놓고는 말 그림 밑에는 문을 뜻하는 영단어 도어를 적어놓고, 시계 밑에는 바람을 의미하는 영단어 윈드를 적어놓은 등의 요상한 작품이죠. 생각 없이 보고 있자면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하는 생각이 들며 ‘정말 초현실적이구나...’라는 표현 외에는 설명하기가 모호한 작품입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남자들이 우산을 쓴 채 허공에 떠 있는 등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나 물건을 이용하는데요. 현실과는 동떨어진 기괴함이 특징인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와는 다르게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오묘함을 가진 것이 르네 마그리트 그림의 특징이죠. 이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특징은 문자를 이용한 그의 그림들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데요. 이 꿈의 열쇠라는 그림 안에서는 그림과 문자의 어울리지 않는 배치를 통해 그림과 이미지, 문자의 독특한 특징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말 그림 밑에 말이라는 단어가 적혀있는 것은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그림과 단어의 배치입니다. 그런데, 마그리트의 그림 속에서는 말 그림 아래 뜬금없이 ‘문’이라는 단어가 적혀있는데요. 이 아이러니한 배치는 그림이 현실적인 모습을 가진 이미지이지만, 결국 그림 자체는 현실이 아니라는 점을 재치있게 표현하기 위한 선택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생각해보면 어울리지 않는 물건과 공간 등을 배치하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라 불리는 초현실주의 기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기도 한데요. 말 그림 밑에 문이 적혀있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과 단어의 조합은 부엌에 놓인 변기통 그림처럼 어울리지 않는 두 이미지의 비정상적인 조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것처럼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르네 마그리트야말로 진정한 초현실주의 예술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현실적이지 않은 세상을 그리기 위해 노력했던 초현실주의 화가들 사이에서 그림 자체가 어차피 현실이 아닌 초현실에 불과하다 말하듯 작품을 내놓았으니 말이죠. 어쩌면, 르네 마그리트는 그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초현실주의 화풍의 거장이라는 호칭보다 그림이라는 이미지에 관한 통찰력이 대단했던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받아들이며 공부해볼 가치가 있는 예술가이지 않은가 하는 잡담 같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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