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날리는 물감의 시작과 끝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작품 '원 : 넘버 31, 1950(One : Number 31, 1950)' 

추상표현주의라고도 통칭하는 이런 물감을 흩날린 그림, 선을 일정하게 그린 그림 등은 참 무의미해 보이는 겉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무한에 가까운 선택의 폭 속에서 하나를 선택해 나가는 그림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그림이지 않을까 하는 잡담 같은 생각을 해보고는 하는데요.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도, 흥미를 느끼지도 않았던 저에게 추상화를 흥미롭게 만들어준 유일한 생각이었죠.

 

물감을 흩날리고 선을 몇 개 그리는 그림은 사실 누구나 다 그릴 수 있는 그림입니다. 정물화, 풍경화와 같은 일반적인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하여 더 잘 그릴 수 있는 그림은 아닌 것이죠. 그런데, 무엇이 더 쉽냐, 어렵냐를 떠나 그저 그림을 그리는 과정 속 선택의 폭으로만 살펴보면요. 화가는 붓을 흩날리기 시작해야 하는 지점부터 끝낼 위치 모두를 굉장히 열린 선택의 폭 속에서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던져집니다.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과처럼 그림을 그리기 위해 동그라미 비슷한 형상을 그리며 시작해서는 사과와 가장 닮은 모습에서 끝내는 정물화와는 그 선택의 폭이 엄청나게 다른 것이죠.

 

추상화가 가지는 선택의 폭은 사실 선택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무작위성 혹은 랜덤에 가까운데요. 그런데, 이 무작위성, 랜덤이라는 존재가 참 사람으로서 흥미롭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내가 태어난 것은 내 선택이 아니었지만, 태어나서 자라나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 앞으로 무엇을 해나갈지를 선택해나가는 모습은 마치 추상화 속의 흩뿌려진 그림과 더 어울리는 모습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평면과 입체의 차이를 이해하며 평면적인 표면에 사과라는 사물을 그려내는 것이 사람의 이성, 지능과 비슷한 모습이라면, 평면에 아무렇게나 흩뿌린 추상화는 마치 항상 랜덤하고 무작위 하게 돌아가는 사람의 행동 자체와 닮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처럼 말이죠.

 

물론 이러한 작은 생각과 흥미 외에는 아직 추상화에 관한 큰 흥밋거리를 찾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과 의식 구조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한 번씩 등장하는 이런 추상화에 관한 이야기는 또 잊을만하면 한 번씩 찾아오는 흥미로운 이야기인 것 같네요. 추상화를 가지고 잡담으로 나눠보기에 딱 좋은 주제인 것 같습니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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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컬렉터 : 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