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잡담 : 예술가의 선택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며 생각보다 정말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심지어는 점을 하나 찍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 앞에서도 넓은 캔버스 위에 어디에 하나의 점을 그릴지 선택해야 하는데요. 사물을 그리면서부터는 점 하나의 위치를 고민하는 것 곱절의 선택 옵션이 생기기 시작하죠. 사물의 위치, 그리는 방향을 포함해, 흐리게 그릴지 뚜렷하게 그릴지 등을 고민해야 합니다.
양동이 두 개를 교묘하게 이어놓고는 8처럼 보이게 만든 이 '노란 8(Yellow Eight)’이라는 작품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인데요. 양동이라는 재료의 선택, 잘라서 붙이는 모양의 선택, 양동이에 부을 액체의 색상 선택, 이름 선택 등 작품의 겉모습 자체는 ‘이게 무슨 짓인가…’ 싶지만, 이 간단해 보이는 작품을 위해서도 작가는 꽤 많은 양의 선택지를 거치는 것이죠.
이는 마치 미술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과 일을 위해 늘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처럼 말이죠. 심지어 일반 관객의 일상 속 선택은 예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행하는 다양한 선택보다 훨씬 빠르고 눈에 보이는 사회적인 이익을 가져다주는데요. 양동이 두 개를 붙이고 8 모양을 만들고 노란 액체를 채워놓은 ‘노란 8’이라는 작품에 비하자면 말이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점 하나를 찍기 위해 고민하는 등의 '예술가의 선택’은 굉장히 값진 것으로 혹은 더 어려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저 잘못된 편견에 불과한 것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면서도 예술가든, 일반 관객이든 삶에서의 값진 선택은 무엇인지 궁금함이 더해지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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