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허스트의 새로운 상어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미학적 잡담 : 데미안 허스트의 새로운 상어

 

삶과 죽음을 주제로 작품을 만드는 데미안 허스트는 일명 '상어 작품'이라고도 불리는 본인의 대표작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을 만들기 위해 호주의 상어잡이에게 상어를 주문했었다고 합니다. ‘사람을 한 입에 잡아먹을 수 있는 크기의 상어’라는 특이한 주문과 함께 거대한 실제 상어의 시체를 얻어낸 데미안 허스트는 이를 방부액에 담가놓는 것으로 작품을 완성했는데요. 한 마리의 상어가 사람을 잡아먹을 듯 큰 입을 벌린 채 죽음이라는 작가의 메세지를 던지고 있는 작품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상어가 교체된 2006년을 기점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데미안 허스트의 상어 작품. (왼쪽 : 2006년 이전 / 오른쪽 : 2006년 이후)

그런데 2006년, 이 작품과 함께 미술에 관해 흥미롭게 생각해볼 사건이 하나 터지는데요. 바로 썩지 말라고 방부액에 담가놓은 상어가 부패하기 시작하다 악취가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죠. 당시 이 작품은 이미 데미안 허스트의 손을 떠나 ‘찰스 사치’라는 영국 거대 컬렉터의 소유인 상태였는데요. 다른 미국의 컬렉터에게 판매를 확정짓고 이관을 기다리는 중이기도 했죠. 더 이상 소유자가 아닌 제작자의 신분인 해당 작품의 작가 데미안 허스트는 자신의 최고 후원자이기도 한 찰스 사치를 위해 방부제 속 상어를 새로운 상어로 교체하는 이례적인 작품 A/S를 진행합니다. 이례적이라 불릴 만큼 독특하고 새로운 상황이었지만, 사실 새로운 상어를 주문하여 바꿔서 담가놓는 것이 전부였던, 그 과정 자체는 아주 간단한 사건이었죠.

 

실제 작품 사진을 살펴보면 2006년을 기점으로 상어의 크기는 비슷하지만, 상어의 종류가 바뀌어 있는 모습을 쉽게 알아챌 수 있는데요. 모르고 보면 눈치를 채기가 쉽지 않은 변화이지만, 생각해보면 참 흥미로운 변화입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박물관에 걸려있는 그림 속 인물이 바뀐 것과 비슷한 상황이니 말이죠. 어쩌면, 죽음이라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가지는 개념, 키워드는 상어의 종류보다는 ‘사람을 한 입에 잡아먹을 수 있는 상어의 크기’가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수조 속 상어를 바꾸는 것이 전부인 과정이지만, 작품을 처음 만든 작가 본인이 바꿨느냐, 작품의 소유자가 작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바꿨느냐와 같은 작은 행동이 가지는 의미의 차이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질문을 떠올리게 만드는데요. 어떻게 그렸느냐, 만들었느냐가 중요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는 누가 무엇을 위해 왜 만들었느냐가 중요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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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컬렉터 : 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