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라는 인간의 환상 속에서

마커스 하비(Marcus Harvey)의 작품 '마이러(Myra)'

 

사람은 언제나 상상이라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상상이라는 환상 없이 오직 물건 자체만을 보고 사는 존재였다면, 서랍 한 켠에 고이 보관하고 있는 오래된 사진은 그저 화질이 낮은 볼품없는 사진에 불과했을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크게는 오래전 시대의 사람이 사용했던 유물은 그저 쓸데없고, 쓸모없는 물건이 되었겠죠. 하지만, 우리에게 오래된 사진은 사진 속에 담긴 오래전 기억이라는 상상과 환상이라는 존재와 함께 현재에서 과거를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소중한 물건이 되는데요. 이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오래전 시대의 유물은 습도와 온도를, 보관을 위한 최적의 상태로 유지한 채 만질 수 조차 없도록 박물관에 보관하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상상과 환상이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굉장히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데요. 커피 한 잔에서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환경적인 이슈를 떠올리고, 커피를 재배하는 곳에서 벌어진다는 노동 착취를 떠올리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이니 말이죠.

 

마이러 힌들리의 사진

조금 극단적인 예일 수 있지만, 마커스 하비의 ‘마이러’라는 작품을 살펴보면 이 부분을 조금 더 확실하게 느껴볼 수 있습니다. 이 마이러라는 작품은 사람의 손바닥을 이용해 점묘화 형식으로 손바닥 하나, 하나를 찍으며 사람의 초상화를 그려낸 그림인데요. 아무런 생각과 상상 없이 바라보고 있자면, 그저 한 여성의 얼굴을 손바닥과 함께 그려낸 그림에 불과하죠. 그런데 이 여성의 정체와 손바닥의 주인을 알고 나면 굉장한 충격에 휩싸이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 여성은 한때 영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소아 연쇄살인마 ‘마이러 힌들리’인데요. 10살, 14살, 17살 등의 어린아이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악마 같은 존재죠. 이 마이러 힌들리는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아동을 오직 쾌락만을 위해 살해한 살인자로 기록되고 있는데요. 영국인들에게는 이 ‘마이러 힌들리’의 얼굴 초상이 소아 연쇄살인의 상징처럼 작용하는 혐오감에 가까운 무서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죠. 

 

그런데, 문제는 이 초상화를 그려낸 손바닥의 주인이 모두 아동이라는 점입니다. 소아 연쇄살인마의 초상을 아동의 손바닥으로 그려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이 초상화가 그저 손바닥으로 그려낸 한 여성의 얼굴만은 아니게끔 만드는데요. 소아 연쇄살인과 아동이라는 두 키워드가 충돌하며 사람들에게 충격의 도가니를 선사하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가 보고있는 것에서 느끼는 상상과 환상은 여럿 물건을 그저 흔한 물건만은 아니게끔 만드는 작용을 해냅니다. 어쩌면 하나의 물건에서 무궁무진한 생각과 상상, 환상을 끄집어내는 이런 인간의 능력은 예술을 만들어내고 관람하는 힘의 원천일지도 모르죠. 문제는 이런 생각과 상상, 환상이라는 우리의 능력을 삶에서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작품 '마이러(My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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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컬렉터 : 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