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짜리 바나나가 만들어내는 논란 속에서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 1960~)의 코미디언(Comedian)

 

2억원에 가까운 바나나 한 송이 작품이 있습니다. 벽에 두꺼운 테이프를 이용해 무심하게 붙여놓은 이 바나나는 '코미디언(Comedian)'이라는 제목을 가진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 1960~)'의 작품인데, 2억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논란이 시작되고 있던 시기 한 행위예술가가 현장에서 해당 바나나를 먹어버리는 것으로 더더욱 뜨거운 논란을 만들며 일반 대중에게 꽤 많이 노출되고 각인된 작품이기도 하죠.

 

이 바나나가 왜 2억에 가까운 가격이 매겨졌는지는 사실 잡담으로 논하기엔 지루한 감이 많이 있습니다. 작품이란 그 자체보다는 뒤에 담겨있는 스토리가 더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나 나올 뿐이니 말이죠. 결국 비슷한 관점의 잡담이 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점점 커져가는 논란과 함께 치솟는 작품의 가격이라는 뻔해져버린 요소와 누군가 먹어버리면 사라져버리는 작품이 작가의 보증서를 거래하는 것으로 무려 3개나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 현대 사회 속 존재라는 것에 관한 조금 더 흥미로운 생각을 들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행위 예술가가 나타나 해당 바나나를 먹어버렸을때도 해당 갤러리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과 함께 새로운 바나나를 현장에서 다시 붙이며 전시를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실 그 현장에 전시된 바나나가 가진 형태 등은 이 작품에서 전혀 중요한 요소 아닌 것처럼 말이죠. 일반 관객으로서는 눈으로 보는 시각예술 속에서 눈으로 보는 요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도라이들의 세상이구나'라는 생각 외에는 결론을 낼 수 없는 혼란으로 받아들여 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논란의 시작이 작품의 어이없는 겉모습이든, 아무 바나나나 해당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든, 작품의 가격이든, 이 작품은 관객의 눈길을 끌어 논란을 만들고 기억 속에 각인되는 것에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러한 성공을 그저 사기에 불과하다고 표현하는 관객들도 있지만, 이것이 성공인지 사기인지를 논하고 있는 그 행위 자체가 이 사회에서는 성공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질문으로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혹은 이 논란의 실체는 무엇이며, 이렇게 작품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진정한 가치가 맞는가 등에 관해 고민하게 만드는 그 사기적으로 보이는 요소가 만들어낸 생각이야말로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며 필요한 그림 실력이나 조소 능력 하나 필요하지 않은 현대미술 작품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일지도 모르죠.

 

현실의 삶보다는 모바일 속에서의 삶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현대의 세상 속에서 직접 보지 않은 것을 인식하는 것들의 존재란 무엇이며, 논란이 대중에게 만들어내는 각인이란 어떻게 만들어지고 존재하는 지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어쩌면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일지도 모릅니다. 새롭게 기억되는 것과 잊혀지는 것도 무섭도록 빨라진 현대 사회 속에서 '오래도록 기억되는 작품으로서 미래에 남겨질 작품이란 이런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기억될 작품의 한 후보로서 존재하게 됐다는 사실이 현재로서는 이 작품을 가치가 없다라고만 말하기엔 힘든 사실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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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컬렉터 : 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