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은 하나의 그림에 담긴 여러 개의 시선이 눈길을 끄는 작품입니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그림을 조용히 보고 있자면, 그림 속 이미지가 화가의 시선인지 혹은 화가의 상상인지가 궁금해지는 작품이기도 한데요. 고전 명화보다는 현대미술에 더 많은 관심이 있던 저에게 그림에 대한 큰 흥미를 끌어낸 몇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림 한 장에 담긴 여러 시선과 함께 그림이라는 이미지가 화가에게, 또 관객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느껴보고 생각해보기 좋은 작품이니 말이죠. 공주, 공주의 시녀, 난쟁이, 국왕과 왕비, 시종 그리고 화가 벨라스케스 본인까지, 그림 속에서는 상당히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이 그림 앞에선 관객이 가장 보편적으로 느끼는 시선은 바로 화가 벨라스케스 본인..
1945년 8월 15일이라는 시간의 표기에 ‘광복이 이뤄진 역사적인 날’이라는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이유는 해당 날짜에 광복이라는 기념적 사건이 이뤄졌기 때문인데요. 이처럼 우리가 매일 함께하고 있는 시간은 날짜라는 시간의 표기법 속에서 해당 날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혹은 우리가 광복을 기억하듯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의 사건과 변화를 파악하고 정리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죠. 오늘은 날짜 속에서 벌어진 사건에 집중하는 날짜의 평범한 사용법과는 다르게 오직 날짜 자체에만 집중한 작품을 살펴볼까 하는데요. 캔버스에 덩그러니 그려진 날짜가 눈에 띄는 ‘투데이 시리즈’라는 작품입니다. 일본 출신의 작가 온 카와라가 제작한 시리즈 작품인데요. 1966년에 시리즈를 시작해서는 죽음을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역작이라 표현되는 ‘모나리자’는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그 눈썹 없는 여자 그림?’이라는 답 정도는 들을 확률이 높은 유명작입니다. 심지어 미술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다양한 서적, 다큐멘터리, 강의를 통해 이 작품에 관한 다양한 해석과 분석, 뒷배경까지 섭렵하고 계신 분도 많으실 텐데요. 사실 이 모나리자는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의 미술에 관해 생각해볼 때 상당히 좋은 예가 되는 작품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방문해 모나리자를 직접 봤든 진품을 본 적 없이 사진과 영상을 통해서만 접했든 모두가 함께 알고 있는 작품이니 말이죠. 이처럼 ‘보았다’와 ‘알다’라는 표현에 비슷하면서도 다른 의미가 존재하는 것은 원본의 복제품 때문인데요. 여기서 복제품은 모나..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을 구분하는 가장 간단한 기준은 작품이 제대로 끝난 것처럼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가 있습니다. 대개는 카메라의 상용화가 이루어진 19세기를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을 구분하는 기점으로 잡는데요. 전통미술 속 화가보다 세상을 빠르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카메라가 장인의 성격이 강했던 전통미술을 변화시켰다는 것이 미술사의 정설입니다. 번개처럼 나타난 사진 기술에 화가들은 카메라가 할 수 없는 배경 없는 그림, 특이한 색의 그림, 특이한 형태의 그림 등을 탄생시키며 현대미술의 시작점이 됐다는 것이죠. 물론 이를 카메라의 발명만을 원인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산업혁명, 시민혁명 등 과학과 사상의 발전과 함께 나타난 사회 전체적인 변화라는 큰 시각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19세기보다 무려 400년이 빠른 15..
미술이 전통미술에서 현대미술로 넘어오며 작품의 경계는 그림, 조각처럼 특정 매체의 틀을 넘어서기 시작합니다. 현대미술 속 작품은 전통미술과는 다르게 표현과 묘사보다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의 행위 자체를 의미하기 시작하는데요. 정확히는 작가의 행위를 의미했다기보다 미술가가 작품을 만드는 행위가 무엇인지 그 자체에 관해 의문을 가졌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런 다양한 변화와 함께 작품은 캔버스 위에 예쁘게 그려진 그림 외에도 선 하나를 그리거나, 물감을 던지는 작가의 행동을 표현하는 그림 등으로 변화했죠. 그런데 이렇게 '작가의 행위가 작품의 일부다'라고 주장하며 나타난 선 하나 그려진 그림조차 당황스럽게 느끼고 있는 관객을 더욱 당황시키는 작품이 나타나는데요. 오늘은 이런 당황스러움 이상의 당황스러..